한한국 IMF 외환위기는 6.25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와중에 생긴 국가적 위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국가 부도가 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고, 그 피해는 엄청났기 때문에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 imf 외환위기
항상 잔잔한 물 위만 지나는 배는 없다

 

위기의 원인

한국은 예전부터 수출 주도형 국가로서, IMF사태가 터지기 전 엄청난 경제 호황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계속해서 더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자국 통화환율을 올리면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국가는 국채를 발행하여 외국 자본을 대거 빌렸고, 그것을 고스란히 기업과 개인들에게 빌려주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국가가 외화보유량의 5배에 달하는 외화를 빌리면서 과다한 부채를 떠맡게 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에 경제위기가 오게됩니다. 외국 자본들은 이러한 위기를 의식하고 한국에 투자했던 투자금도 일제히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율이 과도하게 오르자,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외화를 사용하여 환율을 반대로 낮추는 상황을 만들게 됬으며, 이미 외화보유고는 바닥을 기고있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한국에게 채무기간을 늘려주지 않았으며,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빚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진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외국자본들을 들여와 생산,설비에 투자하면 기술력이 증가하며, 환율을 높이는 정책을 펴서 수출을 증대하는 효과를 통해 한국은 경제적으로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부채와 태국발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며, 한국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IMF는 정답이 아니였다

IMF 국제통화기구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아닙니다. 돈을 빌려주는 대신, 그 국가의 경제정책을 IMF에서 정한 방향에 맞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한국은 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의 한국사회는 청년실업이라는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았지만 대학을 가는 것 만으로도 기업은 사람을 모셔간다고 할 정도로 취업이 잘 되었습니다. 또한 대학 진학을 하지 않더라도, 고졸 채용에 대한 기회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직장을 다니게 되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물론 평균수명이 그때는 더 짧았지만, 모두가 직장에서 정규직이였기 때문에 짤릴 일이 없었고, 앞으로 더 높은 경제발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기업에서 뽑고 있었습니다. 월급 자체도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게 공무원보다 4배 가량 더 많은 돈을 받는 시대라 공무원, 군인과 같은 직업들은 당시 지원자가 미달일 정도로 구인난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변화를 겪게됩니다. IMF는 한국에 자본유입을 해야한다며 무리한 금리인상을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대출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하여 수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하고, 비정규직의 도입으로 하청업체에게 외주를 맡기면서, 입맛대로 노동자를 해고시키기 쉬워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한국은 이러한 문제를 더 이상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IMF에 재협상을 요구합니다. 한국은 이때부터 금융시장에 외국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자 외국 자본들이 우후죽순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알짜배기 기업들을 헐값에 사는 경우도 많았으며, 일본의 대부업체 자금도 대거 들어와 금융시장을 장악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실업률이 엄청나게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없던 청년 실업 문제도 사회문제로 급부상하며 갑작스러운 현실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살율도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리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또 다시 이러한 위기를 겪지 않기위해 능력위주의 채용과 기업 내 무한경쟁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려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또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과거 보통 남자들이 돈을 벌며 외벌이 가정이 많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여성들도 사회참여를 해야겠다는 인식이 강해져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여성이 줄어들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안좋은 시기였기 때문에 출산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혼율이 증가하는 문제도 늘어나게 되었는데, 여러가지 문제 중에서 암묵적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사회참여로 높아지고 가장의 무능함이 문제가 되어 이혼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대안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기업과 개인들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국가는 당장 갚아야 할 외화가 많았던 것으로 상황을 인정하고 해외 은행에서 조금이라도 외화를 빌려서 급한 불을 끄고, 정 안된다면 파산신청을 해서라도 채무를 갚기 위해 국가가 스스로 노력하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했습니다.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위기는 항상 닥치기 마련입니다. 위기를 계속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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